책 :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
작가 : 박균호
읽은 기간 : 2019년 9월 12일 ~ 10월 1일
출판사 : 지상의 책
본문 -
*글의 문체가 반말인 이유는 아버지(자가 박균호)가 딸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식이라 그렇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야구를 좋아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아니? 도루 때문이야. 발이 빠른 주자가 다음 베이스를 훔치는 것은 엄연한 도둑질이기에 비신사적인 운동이라는 것이지. page. 17
가계 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엥겔 지수라고 해. 엥겔 지수가 높을수록 가난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지출의 4분의 3을 먹는 데 쓰는 돈키호테는 400년 전의 이야기임을 고려해도 매우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질 떨어지는 돼지고기, 고기 부스러기, 곰탕, 콩 수프 등이 그 당시 스페인 서민의 밥상에 올랐던 음식이라고 보면 되겠지. page. 21
기독교가 지배하던 유럽에서 예수의 고난을 기리는 사순절에는 육류를 먹을 수 없었어. 청어로 만든 사르디 나스 아렌케는 이 40일 동안 서민들에게 육류를 대신해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지. 돈키호테를 비롯한 당시 스페인 서민들이 청어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야. page. 25
18세기 영국 한정상속
제인 오스틴의 명작<오만과 편견> 알지? 젊은 남녀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잖아. 이 소설에서 신사 계급인 베넷가의 부인은 딸들을 좋은 집안에 시집보내는 것을 일생일대의 과업으로 여기는데,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8세기 영국에는 ‘한정상속’이라는 상속제도가 있었어. 한 집안의 재산권과 지위를 오직 남자만 가질 수 있게 한 제도지. 딸만 있는 부모는 재산을 형제의 장남이나 친척의 장남에게 물려줘야 하는 거야. 딸만 둔 베넷가의 부모는 자식들이 아닌 남자 친척에게 재산을 상속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지. 그래서 딸들을 부잣집으로 시집보내려고 애쓴 거야.
한정상속이라는 제도 역시 목적은 집안의 재산이 분산되거나 다른 집안에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거야.. 사실 한정상속은 장자 상속제도를 보완하고 남성 중심의 가문 승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 생겨났어. 딸에게 재산을 물려주면 다른 가문으로 재산이 넘어가니까 그걸 방지하자는 것이지. 딸에게 재산, 특히 부동산을 물려주면 재산을 잃는다고 인식한 거야. 그래서 딸에게는 부동산 대신 가구나 보석, 현금을 물려줬어. page. 31
장남 농사, 차남 대학(장남에겐 땅을 물려주고 차남에겐 교육을 가르친다.)
실사구시
당시 유럽의 상인들은 유럽에서 총과 면직류 따위를 가져다 아프리카에서 비싼 값에 팔고, 그 돈으로 노예를 사들여서 카리브해의 사탕수수 농장주에게 팔아 치웠어. 노예를 판 돈으로 카리브해에서 설탕과 담배를 산 다음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높은 이윤을 남기고 팔았지. 그게 바로 삼각 무역이야.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표류할 수도 있고 해적에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모험이지만, 성공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지. page. 69
배를 타고 모험을 감행하는 자들은 아주 가망 없는 팔자를 타고났거나 아니면 월등하게 팔자가 넉넉한 사람들로서, 투기 심리를 모험을 통해 팔자를 고치거나 아니면 남들이 하지 못하는 비범한 일을 시도해서 유명해지려는 경우들인 법이지만, 이들에 비하면 내 처지는 한쪽보다는 너무 아랫니고 다른 쪽보다는 너무 위인 터, 이는 중간 계층 내지는 평범한 서민층 중에서 상류 계층이라고 할 만한 위치라, 이 중간 계층의 삶이란 게 아버님 당신이 오랜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 노동하는 부류들처럼 궁핍함과 역경이나 힘든 노역에 시달리지 않으면서도 상류층처럼 오만이나 사치, 야심 시기심으로 인한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되니,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 인간이 행복을 누리기에 가장 적합한 최상의 위치라고 하셨다. <로빈슨 크루소>10~11 책, page. 70
우선 무인도에 표류해서 혼자 사는 로빈슨 크루소의 삶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급자족 경제’의 좋은 예야. 그리고 로빈슨이 섬에 정착하기로 한 다음 제일 먼저 한 일이 집 짓고 울타리를 친 것인데. 자신이 그 섬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로빈슨이 굳이 울타리를 친 이유가 있어. 작가 대니얼 디포가 이를 통해 당시 영국의 농촌에서 시작된 엔클로저 운동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이지. 엔클로저 운동은 공유지나 황무지에 울타리를 쳐 사유지임을 명시하고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던 당시의 움직임을 말해. 개인에 의한 배타적 소유권의 시작이지. 한정된 물자를 적절히 사용하는 로빈슨의 행동들은 경제학의 최우선 원칙인 효율성을 대변하기도 해. 로빈슨이 배에 화약을 발견한 뒤 한꺼번에 폭발할 위험에 대비해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는 대목에서는 투자의 기본 원칙인 ‘분산투자’와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 개념을 설명할 수 있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라는 오늘날의 투자 격언과 일치하지. <로빈슨 크루소> page. 70~71
이와 관련하여 여기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그들의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주어야 합니다. <군주론-마키아벨리> page. 112
그렇다면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여우와 사자를 모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자는 함정에 빠지기 쉽고 여우는 늑대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함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선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혼내주려면 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군주론> page. 115
말하자면 마키아벨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군주는 사자의 포악함과 여우의 간교함이 아니라 사자의 힘과 여우의 영리함을 겸비해야 한다는 거야. page. 115
나에게 속한 삶이란 내 두 딸 안에 있소. 그 애들이 즐거워하고, 행복하고, 멋지게 차려 입고, 양탄자 위를 걷는다면, 내가 어떤 천의 옷을 입건, 내가 어떤 곳에서 잠자건 그게 무슨 상관이겠소? 그 애들이 따뜻하면 나는 춥지 않고, 그 애들이 웃는다면 나는 지루하지 않소. 나의 슬픔이란 그 애들의 슬픔밖에는 없소. 당신이 아버지가 되어, 당신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저 애들은 나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할 때, 당신은 그 어린것들이 당신의 피 한 방울 한 방울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오. 그 애들은 당신의 피에서 피어난 순수한 꽃인 것이오. 그 애들의 걸음걸이에서 당신 자신이 움직이고 있음을 믿게 될 것이오. <중략> 아버지가 되었을 때, 나는 하느님을 이해하였소. 창조가 그분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까. 하느님은 도처에 전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오. 이보시오. 나와 내 딸들의 관계는 그와 같은 것이오. 다만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는 거보다 나는 내 딸들을 더 사랑할 뿐이지. 왜 그러냐 하면 세상은 하느님만큼 아름답지 못한데, 내 딸들은 나보다 더 아름다우니까. <고리오 영감>190~191 책 page. 140
‘레디메이드’는 기성품을 뜻하는 말로,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왔지만 취직하지 못한 주인공 P의 처지를 비유한다. 만들어졌으나 팔리지 않는 기성품에 실업자를 빗댄 것이다. page. 150
“뭐 어데 빈자리가 있어야지.”<<한국 현대.”<< 단편 일제강점기 44: 상>> page. 189
<레디메이드 인생>의 첫 문장이야. 훌륭한 첫 문장으로 잘 거론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인상 깊어. 저자는 이 문장으로 <레디메이드 인생>이 무엇을 다루는 소설인지 선언하거든. 책 page. 151
현대사회의 서로 다른 계층, 계습 사이에서 지배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후대까지 이어지는지, 낮은 계급의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의 계급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지 분석한다. 부르디외의 분석에 따르면 계층, 계급, 집단은 각자 문화적인 취향과 습관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서 다른 계층 , 계급, 집단과 구별 짓는다. 쉽게 말해 혈통, 교육 수준뿐만 아니라 즐겨 먹는 음식, 옷 스포츠, 음악을 통해서도 계급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 경제적으로 계급이 높은 사람들은 그들만의 다양한 취향을 발전시켜 자식들에게 물려준다. 교육은 가장 대표적인 구별 짓기 수단이 된다. page. 157
보르헤스는 인간이 발명한 많은 도구 중에서 책을 가장 놀랍고 대단한 것으로 꼽았어. 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따지고 보면 인간의 육체를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거야. 현미경이나 망원경은 눈의 기능을 확장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지. 이와 달리 책은 인간의 육체가 아닌 기억과 상상을 확장한 것이니 다른 도구들보다 훨씬 놀랍고 대단하다고 말해. 나는 보르헤스의 이러한 말을 책에 대한 찬사 중에서 가장 놀랍고 굉장한 것으로 꼽아 가만 보면 보르헤스가 말하는 것처럼 요즘 주목을 받는 문명의 이기라는 것은 모두 인간의 육체를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아. 자동차는 인간의 발을, 인터넷은 눈과 발의 기능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잖아. 발로 걸어가서 다른 사람의 말을 귀로 듣고 정보를 손으로 기록하고 입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던 것을. 인터넷이 발명되어서 쉽게 하는 것이잖아. page. 193
나아가 이 문제를 다루는 모든 문서들은 엄격한 ‘언어 규칙’‘언어 규칙’을 따랐다. 돌격대로부터 오는 보고서를 제외하고 ‘제거’ ‘박멸’ 또는 ‘학살’ 같은 명백한 의미의 단어들이 쓰여 있는 보고서를 발견하기는 거의 드문 일이다. 학살을 처방하는 암호는 ‘최종 해결책’ ‘소개’와 ‘특별취급’ 등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page. 149
기만과 은폐를 위해 교묘하게 고안된 다양한 ‘언어 규칙’ 가운데 이처럼 히틀러가 첫 번째 전쟁을 벌이는 데 살인자들의 정신상태에 작용한 것보다도 더 결정적이 효과를 발휘한 것은 없었다. 여기서 ‘살인’이라는 말 대신 ‘안락사 제공’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 사람들의 최종 목적지가 여하튼 분명한 죽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도록 하라는 지시가 조금 반어적인 것이 아니었는가를 경찰 심문관이 물었을 때 아이히만은 이 질문을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용서할 수 없는 죄는 사람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고통을 일으키는 것이었다는 것이 아직도 너무나 확고하게 그의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77~178 책 page.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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